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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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 수요저녁예배 설교 (요 20:19-29 /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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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3-27 21:28 조회1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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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mIgqRoN94o0?si=aCS14SZKZm2GU6gd


19절

"안식 후 첫날" 주일이다. 주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주일에 부활하셨다.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제자들은 두려워서 문을 잠그고 벌벌 떨고 있었다. 우리가 혹시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말씀과 기도의 권세를 주시고 성령을 모시고 사는 은혜를 주셨다. 그러면 담대하게 늘 승리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제자들처럼 두려움과 염려가 가득한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를 살펴야 하겠다.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서 문을 닫고 숨어 있는데 주님은 문을 열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오셨다. 부활하신 몸은 신비한 몸이라서 이렇게 할 수 있다. 사람에게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음식을 드실 수도 있고 드시지 않을 수도 있다. 손에 못자국이 있었다고 했다. 부활하신 몸은 신비한 몸인데 이런 모습도 있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21절, 26절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평강이다. 주님의 말씀은 만능의 권세가 있기 때문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평강이 임한다. 풍랑이 일어날 때 주님이 바람과 파도를 향해 잔잔하라고 하면 즉시 잔잔해진다.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런 평안을 주신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믿으면 기쁨과 평안 가운데 살 수 있다. 


20절

평강을 주신 다음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못 박힌 자국과 손,  창 자국이 난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면서 크게 기뻐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고 자기들 앞에 계시고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주님을 다시 만났다. 주님을 만나면 이런 은혜를 입을 수 있다. 주님을 모시면 이런 기쁨이 생긴다. 두려움이 변하여 평안과 기쁨이 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

기도 시간, 말씀 듣는 시간이 주님을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예배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교제를 하면서 평강과 은혜를 누리는 생활을 늘 힘쓰면 좋겠다. 


21절

사명을 주신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지금 두려워서, 유대인들을 피해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세상을 향해 가라고 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숨어 있으려고 하지 말고, 세상에 나가 너희들이 본 것을 증거하라는 것이다. 주님의 부활을 전하라는 것이다. 

우리 모든 성도에게는 이 사명이 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 주님이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살아나셨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이 전도의 사명은 모든 성도에게 다 주어졌다. 과거나 현재의 모든 성도에게 예외 없이 이 사명을 주셨다.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죽음이다. 가장 두렵고 절망적인 것이 죽음이다. 그런 죄인들에게 가장 큰 소망, 복음은 주님의 부활 소식이다. 주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죽을 인생들에게 가장 큰 소망이다. 이것을 증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나가 주님의 부활을 증거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것을 한번도 듣지 못한 자들이 많다. 죽으면 끝나는지 알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면 그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그들을 살릴 수 있다. 


22절

"성령을 받으라"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려면, 복음의 증인이 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을 받아야 힘있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이후에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보혜사 성령 강림 이후에 두려워하지 않고 고난도 기쁨으로 여겼다. 박해와 욕을 먹으면서도 즐거워하며 복음을 증거했다. 성령께서 제자들을 바꾸어 놓으시고 성도들을 강하게 만드셨다. 고난 중에도 기뻐하고 오히려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면서 힘있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성령을 받아야 권능이 생기고 복음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산다. 이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하여 복음 증거하는 일을 감당해야 하겠다. 


23절

주님이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면서 권세를 주셨다. 복음을 받아 믿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죄가 그대로 있게 된다. 죄인을 죄사함 받아서 구원받게 하는 권세를 전도자들에게 주셨다. 나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죄를 사하는 권세는 주님에게만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의 요지는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권한을 우리가 받았다. 복음을 전하면 믿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끝까지 거부하고 믿지 않으면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 간접적으로 죄사함의 권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으니 얼마나 기쁘고 힘이 났겠는가? 


24-25절

재자들이 주님을 만나고 나서 도마에게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전해주었는데 도마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여러 제자들이 말하는데도 못믿겠다고 했다. 의심을 했다. 자기가 직접 만나고 못자국을 손으로 만져 본 다음에 믿겠다고 했다. 오늘날도 도마처럼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도마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을 때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다. 다른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다 만났는데, 그날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믿고 주님을 보았다고 증거하는데도 도마는 못믿는 것이다. 왜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기 때문에 은혜를 못받고 시험에 들고 의심을 한 것이다. 이것이 참 중요한 것이다. 은혜의 자리에 빠지는 것이 굉장한 손해이다. 교회에 가도 별로 얻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결정적인 은혜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도마가 그때 한번 빠짐으로 인해서 혼자 의심하는 자리에 빠지고 시험 드는 자리에 들어가고 말았다. 만약에 주님이 다시 한번 오시지 않았다면 도마는 늘 의심하면서 지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8일 후에 다시 한번 찾아가주셔서 도마가 주님을 만나고 확신을 갖게 된다. 우리가 예배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은혜 받는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이것이 은혜에 유익하고 내가 복받고 사는 길이다. 

사탄이 성도를 시험할 때 쓰는 작전이 있다. 모여 있을 때, 단합해 있을 때에는 시험을 해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 전에 먼저 하는 것이 있는데 흩어 놓는 것이다. 분열 시킨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시험할 때 다 넘어가게 되어 있다. 모여있는 것이 강력한 것이다. 내가 약해도 함께 모여서 전체 속에 있으면 마귀가 공격하지 못한다. 그러나 혼자 떨어져 있으면 마귀의 밥이 되고 만다.

우리가 믿음 지키기 위해서 해야 될 중요한 것이 성실하게 예배를 드리고 교인들과 연합하여 합력하여서 함께 믿음생활을 해나가는 것이다. 두 세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십자가 한편 강도처럼 교회를 다니지 않고서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런데 흔들리지 않고 은혜롭게 믿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교회 생활이 필수이다. 


26절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26절에 "도마도 함께 있고"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전에는 도마가 없어서 부활을 의심하고 못믿었는데, 이번에는 도마가 있었다. 이번에도 도마가 없었다면 부활을 영영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이번에는 도마가 거기 있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다. 


27절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번에도 가운데 서시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도마에게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도마의 생각과 말한 것을 다 알고 계셨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중요하다. 믿는 자가 성도이다. 믿음이 없으면 성도가 아니다. 얘수님을 믿지 않으면, 말씀을 못 믿으면 신앙인이 아니다. 우리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믿음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함께 모여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주님을 만나는 생활에 힘써야 한다. 

믿음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믿음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한다. 믿음은 물건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 많이 하고 말씀 많이 배우면 믿음이 강해진다. 그런데 모이기를 힘쓰지 않으면 믿음이 약해진다. 믿음이 약해지면 의심이 생기고 하나님의 일에 힘쓰지 못한다. 먹어야 힘이 나고 강건해지는 것처럼 말씀을 믿어야 강건해질 수 있다. 


28절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불신하고 의심하던 도마가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을 했다. 우리가 다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각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해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도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의심은 나쁜 것이다. 그런데 의심이 되는 것을 의심이 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의심하면서 믿는 척하지 않았다. 분명하게 확실하게 알기를 원했다. 이 점은 좋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면서 믿는 척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이 믿음 없다고 핀잔을 줄까봐 믿는 척하고 가만히 있는 경우가 있다. 확실하게 믿어지면 가만히 있어도 되지만 의심이 나면 확인해봐야 한다. 도마처럼 분명하게 알기를 원해야 한다. 도마는 이도 저도 아니고, 흐리멍텅하게 가기를 원치 않았다. 의심이 될 때에는 의심이 된다고 말하고 안믿어질 때에는 안믿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난 후에는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고 했다. 이 도마의 믿음을 누가 흔들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이런 믿음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이런 믿음을 가지면 담대해진다. 걱정 근심 두려움이 다 사라진다. 확신이 없으니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마음에 평안이 없고 담대함이 없다. 

도마에게서 이것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을 오래 믿는데도 부활에 대해서 의심하는 자들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도마는 확실한 믿음을 가졌다. 


29절

이 말씀은 우리를 위해서 주시는 말씀이다. 도마는 본 고로 믿었다. 그런데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고 못자국을 만져볼 수 없다. 본 고로 믿은 도마도 잘한 것이지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더 복된 것이다.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8~9)

보지 못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 이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보지 못하고 믿는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볼 수 없는 하나님, 예수님을 말씀 통해 믿게 하려는 것이다. 부활은 반드시 믿어야 하는 진리이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그 믿음은 헛되고 무익한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제자들을 찾아가서 부활을 증거하셨다. 평안과 사명을 주시고 성령 충만케 하시고 큰 권세를 주셨다. 이 은혜를 말씀을 통해 깨닫고 누리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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