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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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주일오전예배 설교 (요 8:29 /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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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3-03 12:29 조회1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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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AcQLUv6RdwE?si=bCOUu4L0-4tyktYG


성경: 요한복음 8:29

제목: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것은 참으로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해야 마음이 편안합니다. 누군가 내 이웃이 있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내가 큰 어려움 당할 때 옆에서 같이 자리를 지켜주고, 아플 때 누군가 내 병을 간호해 준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고맙게 여기십시오. 더욱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면 그것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혼자 두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이런 은혜를 누리면 좋겠습니다.


1. 하나님이 함께 해주심

29절에 “나를 보내신 이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으로 보내신 이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주님은 혼자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의 육체를 입으시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악 세상에서 죄인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말할 수 없이 불편하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주님은 혼자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속해서 예수님과 함께하셨습니다. 29절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어떤 상황에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주님이 진리를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미워하고 대적했습니다. 심지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반대자들이 많은 중에도 위축되지 않으시고 사역을 중단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혼자 두지 않고 함께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16에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요한복음 16:32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붙들려 가서 심문받고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일어날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들은 주님을 떠났습니다. 심지어 제자들까지 다 주님을 버리고 떠났으며 가장 믿었던 수제자 베드로마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주님은 홀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그 힘든 십자가를 승리하고 모든 원수를 이기고 사명을 완수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옆에 계셔도 마음이 든든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해주신다면 얼마나 큰 은혜이고 복입니까? 살다 보면 우리도 홀로 남겨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중한 병에 걸렸을 때, 큰 환난을 당하거나 핍박을 받을 때,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여 혼자라고 느낄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면 참으로 큰 복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미움을 받아 도망 다닐 때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욥이 모든 재산을 다 잃고, 자녀가 다 죽고, 아내마저 외면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받아 애굽으로 팔려 갔을 때,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할 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해주셨습니다(창 39:2, 3, 21, 23절).

성도들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곁에서 나를 위로하시고 나를 도우시고 나를 인도하신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끼게 되면 죽음의 순간에도 평안할 것입니다. 스데반을 보십시오.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임당할 때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겠습니까?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 충만 하여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끼며 살고 계십니까? 우리가 왜 넘어집니까? 왜 쓰러집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 우리의 가장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 이유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과 함께 해주셨습니까? 29절을 보면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였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나를 기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근심하게 하고 진노하게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항상’이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가끔 한 번씩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했다고 했습니다. 어디 가는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가고, 말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전하고, 무슨 일을 할 때도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면서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동생하며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에녹입니다.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은 왜 300년 동안이나 에녹과 함께 해주셨습니까? 히브리서 11:5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녹과 300년 동안이나 동행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일만 하는 사람과는 함께 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내가 기뻐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핵심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도 영광을 받기 위해서이고 구원하신 목적도 영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도 항상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에서 일상적인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반대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까?

로마서 8:7-8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따라 방탕하며 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내 맘대로 내 욕심대로 살면서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겠다고 해도 우리가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죄짓고 있는데 하나님이 곁에 와 계시면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 그들은 하나님이 가까이 오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었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고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함께하셔도 부담스럽지 않도록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만 하며 삽시다.


3.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그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았습니다. 요한복음 6:38-39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아버지의 뜻은 택한 백성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택한 백성을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믿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았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일평생 힘썼습니다. 요한복음 4:3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주님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했습니다.

예수님은 택한 백성 구원하는 일을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시는 33년 동안, 때로는 식사할 겨를도 없이, 쉬지도 못하면서 힘써서 한 일이 영혼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할 때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하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길입니다. 

사무엘상 15:22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왔습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명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문제입니다. 하나님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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