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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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수요저녁예배 설교 (롬 8:31-39 / 사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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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복용교회
작성일24-05-08 21:22 조회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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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eDgu1VGPTE4?feature=shared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것이 나타나있다. 창조와 섭리와 구원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 인생을 돌보시는 것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있다. 그러나 가장 크고 깊게 사랑이 드러나는 것은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이다. 

찬송가 304장 3절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고 놀라와서 다 측량할 수 없고 기록할 수 없다. 사람들의 사랑은 일시적이다. 자기중심적, 이기적이다. 조건이 많고 따지는 것이 많다. 그래서 사랑을 제대로 주지도 받지도 못한다. 사랑하다가 다투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이기적이지 않고 완전히 희생하며 베풀어주는 사랑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 사랑 앞에서는 감사 감격하고 기뻐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지 살펴보고 은혜를 받아야 하겠다. 


31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 "만일"은 의심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을 성경에 기록하셨고 실제로 우리를 도와주신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왜 이렇게 힘들겠느냐 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도와주신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세상 만사를 주장하신다. 전능하셔서 못하시는 일이 없다. 누구도 하나님을 상대할 수 없다. 그런 초능력의 하나님, 가장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 우리 편이 되어주셔서 우리를 도우신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시 118:6~7)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 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대적과 원수가 많았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셔서 나를 도와주시니 두렵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말씀 속에는 우리를 위해서 싸워주신다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시면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고 대적들을 물리쳐주시고 막아주시고 우리를 보호해주신다. 그러므로 걱정 염려할 것 없다. 세상 환난이 심해지고 말세에 어려운 일이 자꾸 생기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대적할 자가 없다. 이 말씀 한 구절만 붙들어도 우리가 담대하게 살 수 있고 믿음생활을 승리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32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주셨다. 아들을 내어주셨다. 이것은 다른 것을 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것이다. 사람을 예로 생각해보자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데, 자식이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말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마음을 갖게 된다. 어떤 부모라도 자녀를 희생시켜서 내가 무슨 유익을 얻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어주셨다.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다. 죄인들을 대신해서 피흘리게 하시고 우리 죄를 다 짊어지고 희생제물이 되도록 하셨다. 이 사랑은 다른 어떤 사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건강 주시고 축복 주시고 성공하게 하시고 목표를 이뤄주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귀한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내어주시지 않겠는가? 가장 소중한 아들도 주셨는데 왜 다른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만약에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우리에게 있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이 되신다면 반드시 주실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님이 인색하신 것처럼, 안주려고 하시는 것처럼 생각한다. 부르짖으면서 억지로라도 뽑아 내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은 인색한 분이 아니다. 안 주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이런 하나님으로 생각했다. 하나님은 주시고 싶어하신다. 은혜와 복을 주시고 싶어하시고 모든 좋은 것을 거저 다 주고 싶어하신다. 독생자를 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주셨는데 다른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너무 많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셔서 주셨다. 우리에게 돈을 받고 파시지 않았다. 꽃과 나무와 해, 달, 별, 공기와 물을 그냥 다 주셨다. 부모님도 주시고 형제도 주시고 자녀도 주시고 친구도 주셨다. 뿐만 아니라 구원도 주시고 천국도 주시고 성경도 주시고 칭의도 주셨다. 은혜로 다 주셨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는가?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말씀도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은혜와 힘이 된다. 


33절

"택하신 자들" 창세 전에 택하셨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택하셨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택한 자를 정하시고 만드셨다. 우리를 기억하시고 은혜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 우리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겨 놓으시고 불러서 온갖 은총과 사랑을 거저 주셨다.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자로 삼고 은혜와 복을 주시는 사람을 누가 고발하겠는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택하시기만 하지 않고 의롭다고 하셨다. 택한 자를 불러서 예수님을 믿고 하시고 십자가의 대속의 능력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함을 주셨다. 그래서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해방된 은혜를 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의롭다하신 자를 누구도 송사할 수 없다.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슥 3:2~4)

사탄이 송사할 때 하나님이 사탄을 책망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다 벗겨 주시고 죄과를 제거해주시고 의의 옷을 입혀주셨다. 죄사함 받고 의롭게 된 자임을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누구도 송사할 수 없고 정죄할 수 없고 고발할 수 없다. 이런 은혜를 우리에게 입혀주셨다. 

세상에서도 누가 나한테 잘못하면 송사를 한다. 1심에서 재판하고 항소하면 2심에서 재판하고, 또 항소하면 대법원에서 재판하는데,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면 끝이다. 하나님은 대법원보다 훨씬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의롭다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도 고발할 수 없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지 알 수 없다. 


34절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귀는 우리를 늘 고소하고 정죄하려고 한다. 조그만한 허물과 잘못만 보여도 우리를 정죄하고 고발해서 넘어뜨리려고 한다. 그런데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 마귀도 정죄할 수 없고 사람도 정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중요한 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이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다. 주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피흘려서 죄를 사해주시고 다 탕감해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셨다.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시 85: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시 103: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 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 43:25)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예수님께서 죽어주셨으므로 우리의 죄가 다 사해졌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가 다 사해졌다는 증거를 나타내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주신다.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지면 주께서 아버지께 변호하시고 우리를 위해 간구해주신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감사한 일인가! 성령도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간구해주신다. 우리는 이런 은혜를 입고 사는 자들이다.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력하고 끝없이 계속되고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도록 우리에게 부어지기 때문에 그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생명 바쳐서 사랑하신 무조건 적인 사랑이다. 그 사랑에서 누구도 끊을 수 없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받게 되고 그 사랑 안에 살게 되고 그 사랑을 힘입어 믿음생활하고 헌신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풍성히 입으면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변화된다. 주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사랑에 감격하지 않으면 일하는 것이 힘들고 짜증난다. 그런데 사랑에 감격하게 되면 기쁨과 감사함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일곱가지 사탄의 공격도구들을 말하면서 이 사랑이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한다.

환난은 모든 어려움을 대표하는 용어이다. 쉽게 말해서 시련, 고난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환난이 와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곤고는 좁은 장소에 갇혀서 숨쉴 수 없을만큼 답답한 상황이다.

박해는 노골적으로 때리고 미워하고 공격하는 행위이다.

기근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핍박할 때 직장에서 쫓겨나고 집에서도 쫓겨나게 되면 굶고 헐벗는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적신은 벌거벗은 몸이라는 뜻이다. 일제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다가 홀딱 벗겨놓고 조롱했다. 얼마나 수치스럽게 만든 것인가! 실제로 마귀의 종들이 성도들을 이렇게 핍박했다.

위험은 많은 위험을 당하게 하는 것이다. 죽음의 협박을 하고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고문해서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각양각종 위험스러운 일을 만나도록 한다.

칼은 전쟁과 죽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죽이는 것이다. 가족들을 죽이기도 한다. 

이런 일 앞에서 사람이 약해지고 두려워질 수 밖에 없는데 그래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36절

이사야서를 인용한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런 고난과 핍박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성도들도 말세에는 이런 환난과 핍박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당해도 이길 것이다. 


37절

"이 모든 일" 35절에 말한 일곱가지를 가리킨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리라! 이런 환난과 시험을 당해도 넉넉히 이긴다. 겨우 참고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크고 넘치기 때문에 이렇게 승리할 수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다.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 5:39~42)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8~10)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믿음으로 살면서 승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힘이 없고 돈도 없고 약하고 손해보는 것 같은데 나중에 가서 보면 이긴 자이고 영광을 누리며 산다. 복을 받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삶이 가능하다. 주의 사랑에 이끌려 가면 이렇게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 


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확신은 아는 것보다 강한 것이다. 그냥 믿는 것보다 강한 것이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변함이 없었다. 사망은 육체적인 죽음을 말하고 생명은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생명을 가진 것인데 죽인다고 시험한다. 천사들은 악한 천사를 가리킨다. 권세자는 악한 통치자들이 핍박하는 것을 가리킨다. 현재 일은 현재 당하는 어려움, 장래 일은 앞으로 당할 시험과 어려움, 능력은 권세자들을 가리키고, 높음, 깊음은 영광과 치욕, 존귀와 멸시, 높아짐과 낮아짐을 의미한다.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크고 강하고 놀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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